일본 총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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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총리부는 1949년 발족하여 1984년 총무청 발족과 함께 폐지된 일본의 행정기관이다. 내각총리대신을 장으로 하였으며, 내각관방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총리 보좌 역할을 수행했다. 총리부 총무장관은 국무대신을 겸임하며, 총리부 본부는 총리 직할 기능과 종합 조정 기능을 수행했다. 1984년 총무청으로 개편되면서 인사, 통계 관련 업무가 이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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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리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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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국가 | 일본 |
종류 | 국가 행정 조직법에 근거하는 행정 기관 (1949년 6월 1일 ~ 2001년 1월 5일) |
설치 근거 법률 | 국가 행정 조직법 |
개요 | |
전신 | 내각총리대신 |
후신 | 내각부 |
본부 | |
소재지 | 도쿄도 지요다구 나가타초 1-6-1 |
조직 | |
장 | 총리부총리 |
사무차관 | 총리부 사무차관 |
내부 부국 | 비서실 홍보실 통계국 인사국 은급국 상훈국 청소년 대책 본부 |
심의회 등 | 경제 기획 회의 교통 안전 대책 회의 수도권 정비 심의회 중앙 방재 회의 토지 정책 심의회 교통 정책 심의회 전파 감리 심의회 통계 심의회 청소년 문제 심의회 |
시설 등 기관 | 중앙 통계 연수소 |
특수 법인 | 일본 개발 은행 일본 수출입 은행 |
연혁 | |
1947년 5월 3일 | 일본국 헌법 시행. 내각총리대신의 소속으로 설치. |
1949년 6월 1일 | 국가 행정 조직법 시행에 따라, 내각총리대신의 관리하에, 총리부를 설치. |
2001년 1월 6일 | 중앙 성청 재편에 따라 폐지. 내각부로 재편. |
2. 연혁
- 1947년 5월 3일 - 일본국 헌법 시행에 따라 기존 내각 소속 부국을 총리청으로 통합했다. 総理府일본어 관제 정령 제3호에 따르면, "이 정령 시행 시 현행 내각 관방 및 은급국 및 통계국에서 담당하는 사무 (각의 사항의 정리 외 내각의 서무를 제외)를 담당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내부 부국으로서 총리청 관방, 은급국, 통계국이 설치되었으며, 전재 부흥원 등 내각 소관 기관들을 총리청에 편입하고, 최고위 관직명 "내각 사무관"을 "총리청 사무관"으로 개정했다.
- 1948년 2월 26일 - 바락이었던 청사가 전소되었다.
- 1949년 6월 1일 - 국가 행정 조직법 및 총리부 설치법[1] 시행에 따라 총리청을 폐지하고 '''총리부'''를 발족시켰다. 내부 부국은 내각총리대신 관방, 은급국, 통계국, 신문 출판 용지 할당국으로 구성되었다. 대신 관방은 "내각법 제12조에 정하는 내각 관방의 소관에 속하는 사무를 담당한다"고 규정되었다. 총리부의 장은 내각총리대신이었지만, 실제 사무는 내각관방장관 및 내각관방 부장관이 감독했다.
- 1950년 8월 10일 - 경찰 예비대령 공포에 따라, 총리부 기관으로서 경찰 예비대가 설치되었다.
- 1956년 1월 1일 - 원자력국을 설치했다 (같은 해 5월, 과학기술청 발족에 의해 이관).
- 1957년 8월 1일 - 내각총리대신 관방에서 처리해 온 내각 관방 사무를 내각 관방에 전임 직원을 두어 담당하게 하고, 총리부와 내각 관방 사무를 분리했다. 총리부 총무 장관 및 총리부 총무 부장관을 신설하고, 내각관방장관 및 내각관방 부장관은 총리부 담당에서 제외되었다. 총리부 총무 장관에는 국무대신을 임명할 수 있었지만, 실제 임용은 없었다. 총리부 총무 장관은 각의 배석자, 총리부 총무 부장관은 사무 차관 회의(이후 사무 차관 등 회의로 개칭) 구성원이었다.
- 1958년 5월 15일 - 오키나와·북방 문제 등을 소관하는 특별 지역 연락국을 설치 (1970년 5월, 오키나와·북방 대책청으로 이행).
- 1963년 6월 11일 - 총리부 총무 장관은 내각관방장관과 함께 인증관으로 대우받았다.
- 1964년 7월 1일 - 생존자 서훈 재개에 따라, 내각총리대신 관방 상훈부를 격상, 상훈국으로 하였다.
- 1965년 5월 19일 - ILO87호 조약 비준에 따라, 내각총리대신은 인사원과 함께 국가 공무원법에 근거한 중앙 인사 행정 기관이 되었다. 인사국을 신설하여, 인사원과 대장성으로부터 관련 사무를 이관받고 각 성 인사 관리의 종합 조정을 담당했다. 총리부 총무 장관에는 국무대신을 맡기도록 법정화하고, 정무 담당 총리부 총무 부장관을 증원했다. 총리부 총무 장관은 각의 구성원이 되고, 총리부 총무 부장관 (정무)은 각의 배석자 및 정무차관 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 1966년 4월 1일 - 청소년 행정 조정에 해당하는 청소년국을 설치 (1968년 6월, 사토 에이사쿠 수상의 각 성청 일률 일국 삭감 방침에 따라 청소년 대책 본부로 이행).
- 1982년 7월 30일 - 제2차 임시 행정 조사회는 '''종합 관리청''' (가칭) 설치를 제안했다. 총리부 인사국을 행정 관리청으로 이관하여 행정 기관 인사·조직·정원 관리를 일원화하는 구상이었다.
- 1983년
- 7월 15일 - 자유민주당 하시모토 류타로 행재정 조사회장이 총무청 설치를 내용으로 하는 "하시모토 시안"을 정부에 제시했다. 총리부 인사국 외 은급국도 광의의 인사 담당 부국으로서 이관 대상으로 하고, 상훈국은 내각으로 이관, 총리부는 통계국을 주체로 하는 안이었다.
- 9월 2일 - 총무청 설치를 각의에 양해했다. 린초 제언이나 하시모토 안과 달리, 인사국·은급국 뿐만 아니라, 통계국·청소년 대책 본부·북방 대책 본부 등 대부분의 기능을 신설청에 합류시키는 내용이었다. 총리부 측은 신설청에서의 총리부 출신자 발언력 저하를 불안시하여 통계국 등도 이관 대상에 포함시켰다.
- 1984년 7월 1일 - '''총무청''' 발족과 함께 총리부 본부는 대신 관방과 상훈국만으로 슬림화되었다. 총리부 총무 장관 및 총리부 총무 부장관을 폐지하고, 총리부 본부 및 기타 기관 (대신청은 제외) 소관 사항 사무는 내각관방장관 및 내각관방 부장관의 감독으로 돌아갔다. 소관 사항을 통괄하는 직으로서, '''총리부 차장''' (사무 차관급)이 신설되었다.
- 1999년 9월 20일 - 중앙 성청 재편으로의 이행기에 총리부에 '''총리부 정무 차관'''을 설치했다.
- 2000년 4월 1일 - 중앙 성청 재편에 앞서 원자력 안전 위원회 사무국 기능이 과학기술청에서 분리되어 이관되었다.
- 2001년 1월 6일 - 중앙 성청 개편에 따라 총리부는 '''내각부'''로 개편되었다.
2. 1. 총리부의 기능 변화 (1984년 이전)
総理府일본어의 기능은 1984년 총무청 발족 전까지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1947년 5월 3일: 일본국 헌법 시행에 따라 기존 내각 소속 부국을 총리청으로 통합하였다.
- 1949년 6월 1일: 국가행정조직법 및 총리부 설치법[1] 시행에 따라 총리청을 폐지하고 총리부를 발족시켰다. 총리부의 장은 내각총리대신이었으나, 실제 사무는 내각관방장관 및 내각관방부장관이 감독하였다.
- 1957년 8월 1일: 총리부 대신관방(大臣官房)이 처리하던 내각 관방 사무를 내각관방 자체 직원을 통해 처리하도록 하여 총리부와 내각 관방 사무를 분리하였다. 총리부 총무장관 및 총리부 총무부장관을 신설하고, 내각관방장관 및 내각관방부장관은 총리부 담당에서 분리되었다. 총리부 총무장관은 국무대신만 임명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임용되지는 않았다. 총리부 총무장관은 내각회의 배석자가 되었고, 총리부 총무부장관은 사무차관 회의(이후 사무차관 등 회의로 개칭) 구성원이었다.
- 1963년 6월 11일: 총리부 총무장관은 내각관방장관과 함께 인증관(認証官)이 되었다.
- 1965년 5월 19일: 인사원으로부터 국가 공무원의 능률, 후생, 복무에 관한 사무, 대장성으로부터 퇴직 수당에 관한 사무를 이관받아 총리부는 인사원과 함께 중앙인사행정을 담당하게 되었다. 총리부 총무장관은 국무대신만 임명되도록 법정화되었고, 정무 담당 총리부 총무부장관 직이 신설되었다. 총리부 총무장관은 내각회의 구성원이 되었고, 총리부 총무부장관(정무)은 내각회의 배석자 및 정무 차관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 1982년 7월 30일: 임시 행정조사회(제2차 임시행정조사회)는 종합관리청(가칭) 설치를 제안하였다.
- 1983년:
- 7월 15일: 자유민주당 재무행정조사회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 회장이 총무청 설치를 내용으로 하는 하시모토 시안(試案)을 내각에 제시하였다.
- 9월 2일: 총무청 설치를 내각회의에 제시하였다. 임시 행정조사회의 제안이나 하시모토안과 달리 인사, 은급(恩給) 양국(兩局) 외에 통계국이나 특정 시책의 종합 조정 부문도 신설되는 청에 합류시키는 내용을 심의하였다. 총리부 관료는 신설되는 청에서 총리부 출신자의 발언력 저하를 불안시하여 통계국도 이관 대상에 포함시켰다.
- 1984년 7월 1일: 총무청 발족과 함께 총리부 본부는 대신관방과 상훈국만으로 소규모화되었다. 총리부 총무장관 및 총리부 총무부장관 직은 폐지되었고, 총리부 본부 및 그 외 기관(대신청은 제외)의 소관 사무는 내각관방장관 및 내각관방부장관이 감독하게 되었다. 소관 사항을 통괄하는 직책으로 총리부 차장이 신설되었다. 총무청으로 인사국, 은급국, 통계국, 교통안전대책실, 노인대책실, 지역개선대책실, 청소년대책본부, 북방대책본부가 이관되었다.
3. 조직
총리부 본부(외국을 제외한 행정기관)는 총리 직할 기능과 종합 조정 기능을 담당했다. 내각총리대신 직속 기관으로서 사무 성격상 총리 스스로가 직할해야 할 국(局) 관련 사무, 임기응변식 정치 판단에 의해 총리가 직할해야 한다고 판단한 사무를 담당하는 등 총리 직할 기능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내각관방과 일체가 되어 종합 조정 기능을 담당했다.
총리의 직할 기능은 다음과 같았다.
- 사무 성격상 총리 스스로가 직할해야 할 국(局)의 기본과 관련되는 사무(연호 등)
- 임기응변의 정치 판단 등에 의해 총리 스스로가 직할 해야 한다고 판단한 사무(행정개혁회의, 국제평화협력본부, 한신·아와지 대지진 부흥 대책 본부)
- 총리가 분담 관리시 최종 책임을 지는 사무
내각총리대신을 보좌하는 기관으로서는 각료를 포함한 내각 자체의 보좌 기관인 내각관방이 있었다. 이 조직은 총리부 본부와는 법령상 다른 조직이었지만 함께 내각총리대신을 주임 대신으로 선임해 그 관할이 동일하기 때문에 사실상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총리부의 연혁은 다음과 같다.
연도 | 내용 |
---|---|
1947년 5월 3일 | 일본국 헌법 시행에 따라 기존 내각 소속 부국을 총리청으로 통합. |
1948년 2월 26일 | 바락이었던 청사가 전소. |
1949년 6월 1일 | 국가 행정 조직법 및 총리부 설치법[1] 시행에 따라 총리청을 폐지하고 총리부 발족. |
1950년 8월 10일 | 경찰 예비대령 공포. 총리부 기관으로 경찰 예비대 설치. |
1956년 1월 1일 | 원자력국 설치 (같은 해 5월, 과학기술청 발족에 의해 이관). |
1957년 8월 1일 | 내각총리대신 관방에서 처리해 온 내각 관방 사무를 내각 관방에 전임 직원을 두고 담당하게 하고, 총리부와 내각 관방의 사무 분리 실시. |
1958년 5월 15일 | 오키나와·북방 문제 등을 소관하는 특별 지역 연락국 설치 (1970년 5월, 오키나와·북방 대책청으로 이행). |
1963년 6월 11일 | 총리부 총무 장관은 내각관방장관과 함께 새롭게 인증관으로 대우. |
1964년 7월 1일 | 생존자 서훈 재개에 따라, 내각총리대신 관방 상훈부를 격상, 상훈국으로 함. |
1965년 5월 19일 | ILO87호 조약 비준에 따라, 내각총리대신은 인사원과 함께 국가 공무원법에 근거한 중앙 인사 행정 기관이 됨. |
1966년 4월 1일 | 청소년 행정 조정에 해당하는 청소년국 설치 (1968년 6월, 사토 에이사쿠 수상의 내놓은 각 성청 일률 일국 삭감의 대상이 되어, 청소년 대책 본부로 이행). |
1982년 7월 30일 | 제2차 임시 행정 조사회 (제2차 린초)는 종합 관리청 (가칭) 설치 구상 제안. |
1983년 7월 15일 | 자유민주당 행재정 조사회 하시모토 류타로 회장이 총무청 설치를 내용으로 하는 "하시모토 시안"을 정부에 제시. |
1983년 9월 2일 | 총무청 설치 각의 양해. |
1984년 7월 1일 | 총무청 발족. 총리부 주요 부국을 외청화한 결과, 총리부 본부는 대신 관방과 상훈국만으로 슬림화. |
1999년 9월 20일 | 중앙 성청 재편으로의 이행기에서, 총리부에 총리부 정무 차관 설치. |
2000년 4월 1일 | 중앙 성청 재편에 앞서 원자력 안전 위원회 사무국 기능이 과학기술청에서 분리되어 이관. |
2001년 1월 6일 | 중앙 성청 재편에 따라 총리부는 내각부로 개편. |
3. 1. 간부
- 내각총리대신
- 내각관방장관
- 내각관방 부장관 (1998년 7월 - 3명 체제)
- 총리부 정무차관 (1999년 9월 20일 신설)
- 총리부 차장 (1명)
3. 2. 내부 부국
- 내각총리대신관방
- 상훈국
3. 3. 외청
4. 총리부 총무장관
총리부는 내각 아래에서 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각 성(省)과 함께 설치된 행정기관이다. 내각 자체를 보조하는 내각관방과는 조직상 위치가 명확히 달랐다.[2] 총리부 직원이 내각관방 사무를 겸임 처리하는 등의 문제로, 내각총리대신관방이 내각관방 사무를 맡던 체제를 고쳐 내각관방을 독립시키고,[3] 총리부에 차관급 직책을 설치하는 행재정개혁이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총리부 사무를 관리하는 총무장관이 설치되었으며, 1963년 6월 11일부터 인증관, 1965년 5월 19일에는 국무대신이 되었다.
총리부 총무장관은 1984년 총무청이 신설되면서 폐지되었다.